빗나감 (RE: 이방인)

지난 밤의 냄새가 방을 가득 메울 때쯤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어제와는 또 다른 낯선 해가 걸려있다.
손에는 지난 밤 읽다 지쳐 잠들었던 소설이 한 권 들려있다.
나를 꿰뚫으려 하는 수많은 눈동자들을 지나친다.
그 시선들은 나를 빗나간다.

카페에 들어서서 책을 내려놓는다.
겉표지에는 먼 나라의 먼 시간을 살아냈던 사람의 얼굴 사진이 걸려있다.
담배를 물고 서늘한 눈동자를 어딘가로 던지고 있다.
눈빛은 날카로우리만큼 또렷하지만 그 초점은 어느 것에도 무관심하다.
이 사람도 자기를 빗나가는 것들에 진저리를 느꼈던 모양이다.
얼굴을 펼쳐보면 그런 것들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글뭉치에 붙은 낯설다는 뜻의 이름은 오늘따라 낯설지가 않다.

문득 내가 보는 이 풍경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올린다.
누구의 것인가. 분명 내 것이라 답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그 안에 무엇 하나 내 것은 없다.
과연 세계는 언제나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풍경은 나를 빗나간다.

주머니 안에서 전화기가 울린다.
서신이 와 있다.
행사가 있다며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내용이다.
초대받은 이름들 사이로 내 이름이 보인다.
모르는 공간에서 저 이름들과 웃음을 나누는 나를 잠시 상상해본다.
몸을 떠는 나와 초대받은 나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떠올린다.
참석하겠다는 내용의 답신을 자아낸다.
나는 나를 빗나간다.

거리를 분주히 메우는 시선들,
내 것이 아닌 나의 풍경,
다른 나들과 관계하는 나,
그 모든 것은 내 이름을 향해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이 나를 빗나간다.
내 이름이 내 것이 아닌데 어찌 나를 찾아올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