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나가하마 만게츠]

2020.02.24-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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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2020.02.11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다시 이 땅을 밟았다. 낯 익은 듯 낯선 풍경에 발걸음이 복잡해진다. 18년만인가. 유년기를 지냈던 이 마을은 이제 ‘해리단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용산의 ‘경리단길’을 모방하여 이곳저곳 생기고 있는 상권 골목들 중 하나다. 육군 경리단이 위치해있던 곳이라 경리단길이란다. 경리단길의 성업 신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욕심은 이해하지만, 버젓이 이름이 있는 길에 경리단길의 망령이 자꾸만 포자를 퍼뜨리며 개명시키고 있으니 반갑지만은 않다. 활성화된 상권의 롤모델이 경리단길 하나로 수렴하는 것도 재고해보아야 할 일이다. 거기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또 하나의 과제다. 어찌되었든 내게 이 동네는 여전히 우1동이다.

  각 지역에는 그 지역의 특색에 맞는 컨셉과 기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목표했던 가게가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재래시장에서 찬거리를 사들고 방앗간에 들러 참깨 볶는 향내를 즐기던 그 시절의 풍경과는 역시 사뭇 달랐다.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강조한 외관과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라멘 가게 <나가하마 만게츠>였다.

  주변에는 어릴 적 기억 속의 건물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 건물들이 뼈대는 남아 있었지만, 해리단길 사업의 트렌드를 얼른 따라잡으려는 듯 1층은 모두 리모델링으로 소란스러웠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우수수 생겨난 인스타그램 감성의 카페들을 구경하다 와서 그런지 이질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식당이야말로 오히려 부산에는 더 어울리는 아이템인가 싶다.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채 1시간도 안 되는 비행으로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니 우리 정서와는 다른 서양의 문물인 카페 문화보다는 라멘 가게를 발견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커피콩이 재배되지 않는 한국 땅에 이처럼 카페가 많이 들어서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가게에 들어서자 주문용 무인기(kiosk, 키오스크)가 응대해주었다. 요즘은 한국에도 키오스크가 상용화되면서 대기업 뿐만 아니라 영세업소들까지 키오스크를 들여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홀 인력을 확충하는 것보다 키오스크 한 대를 운용하는 것이 보다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응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는 시스템은 국내에서 그리 흔치 않았다. 반면 일본에서는 요식업에서 무인기를 사용해온 역사가 길다. 10년 전 오사카를 처음 방문했던 날, 일본 친구들이 데려가 준 라멘 가게에서 처음 보았던 무인기 주문은 꽤나 충격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터치스크린 방식도 아니고 기계식 버튼을 딸깍 누르면 지하철 승차권 모양의 식권이 딸깍 튀어나오는 형태였다. 주문이 주방으로 바로 입력되는 방식도 아니고, 무인기에서 뽑은 식권을 직원에게 건네주면 주문이 접수되는 방식이었다. 최근 도쿄를 방문했었는데, 놀랍게도 일본은 지금까지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터치스크린에 음성인식까지 상용화된 시대에 기계식 자판기라니. 그러고보면 역시 뉴테크놀로지와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한국이다. 시작은 늦어도 변화는 누구보다 빠르게! 재밌는 나라다. 아무튼 다른 음식은 몰라도 라멘만큼은 무인기로 주문을 받는 것이 전통(?) 방식에 가깝다는 뜻이다.

  요즘 유행하는 키오스크 문화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가령 맥도날드처럼 정형화되고 감성이 배제된 서비스의 경우에는 키오스크의 도입이 아주 효율적이다. 정형화된 서비스의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 소비자와 캐셔 직원이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줄어들고, 회전율도 늘어난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키오스크의 인터페이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사진과 메뉴 이름만 달랑 기재해놓은 키오스크의 메뉴판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비스 구매 경로가 정형화되지 않은 영세업소들은 어떨까?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고, 소비자 경험에 감성 요소가 개입하는, 그런 가게들은 어떨까? 메뉴의 이름만으로는 어떤 요리인지 유추하기 힘든,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음식을 판매하는 가게들은 어떨까? 키오스크는 서비스 접점을 무기적이고 지루하게 만든다. 어느 가게를 가나 주문 과정이 획일화되어 있다면, 인적 상호작용을 통한 정서의 교류가 가져다주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놓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오스크의 도입이 이토록 유행을 타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갈수록 식사 시간에 감성을 기대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일 테다. 현대인의 식사는 또 하나의 경험이자 놀이이기를 그치고, 그저 노동의 현장으로 되돌아가기 전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에 불과하다. 벽면에 설치된 충전기 앞에 길게 줄을 선 안드로이드의 행렬을 상상했다.

  주문을 맡기고 자리에 앉았다. 후쿠오카에서 1963년 개업했다고 하니 57년 째 이어가고 있는 뼈대 있는 가게다. 후쿠오카 본토식으로 조리하는 톤코츠 라멘 전문점이란다. 톤코츠 라멘은 돼지사골 육수를 베이스로 쓰는 모든 종류의 라멘을 일컫는 말이다. 일어로 ‘tonkotsu(豚骨)’는 돼지 돈(豚)자에 뼈 골(骨)자를 써서 ‘돼지 뼈’라는 뜻이다. 문자그대로 돼지 뼈를 우려낸 육수를 뜻한다. 톤코츠 라멘의 발상지는 후쿠오카의 하카타 지역인데, 마치 한국에서 돼지국밥을 부산의 로컬푸드로 취급하듯 일본에서는 톤코츠 라멘을 큐슈 지방의 로컬푸드로 취급한다. 한국에서는 톤코츠 라멘이 더 인기를 끌고 있기에 흔히 라멘 하면 톤코츠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일본에서는 톤코츠 라멘이 오히려 마이너한 편이다. 돼지국밥이 돼지 향 때문에 호불호를 타듯이 일본인들에게 톤코츠는 그 꼬릿한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조금 나뉘는 모양이다.

  후쿠오카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가게를 주욱 둘러보았다. 하카타역 근처 라멘 가게에서 접했던 것과 아주 흡사한 서비스 디자인이다. 중앙에 있는 주방을 둘러싸고 디귿(ㄷ)자 형태로 카운터석이 이어져있다. 객석에는 생마늘과 마늘 크러셔, 그라인더 일체형 통에 담긴 참깨, 백후추, 시치미, 갓김치가 구비되어 있다. 메뉴는 세 가지다. 스프라멘, 야끼라멘, 그리고 하네츠키 교자. 스프라멘은 우리가 흔히 아는 형태로, 따뜻한 스프(육수)에 면을 넣은 요리다. 야끼라멘은 후쿠오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형태의 라멘인데, 스프에 타레(소스)를 많이 섞은 소스에 면을 볶아서 내는 볶음면 요리다. 하네츠키 교자는 우리네 만두와 비슷한 일본의 교자 요리의 일종인데, 특징은 교자들을 구운 후 전분물을 팬에 둘러 얇고 바삭한 반죽층을 만든다는 점이다. 시각적인 프레젠테이션과 함께 바삭한 식감을 더하는 스킬이다. 교자를 반죽으로 이어붙인 모양이 날개가 달린 것 같다고 하여 ‘하네츠키(hanetsuki, 날개 달린)’ 교자다. 아쉽게도 이 날은 하네츠키 교자를 주문하지 못했다. (라멘과 관련된 개념 정리와 그 외 상세한 이야기는 내 지식사전에 등록된 <라멘> 글을 참고하라.)

  드디어 주문한 스프라멘이 나왔다. 전 객석이 카운터석이기 때문에 서빙 직원이 따로 없고 요리사가 손님에게 음식을 바로 건네준다. 일본의 식문화에는 요리사와 손님이 직접 대면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예를 들어 일식의 대표인 스시 문화를 떠올려보면, 이게 상당히 특이하다. 요리사가 손님과 대화를 나누며 손님 눈 앞에서 음식을 완성하고 한 조각 씩 식탁에 얹어준다. 마치 요리사와 손님이 함께 식사를 만들어나가는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라멘도 그렇고 스시도 그렇고, 요리사와 직접 대면하여 음식을 건네받으면 요리에 대한 신뢰도가 팍팍 상승한다. 이렇게 직접 눈을 마주보면서 내어준 요리가 허접하지는 않겠지! ‘장인정신’ 이미지로 명성이 난 일본인들의 정서가 느껴진다.

  서빙된 스프라멘의 구성은 하카타식의 얇은 면, 돼지사골 스프에 간장 타레를 섞은 국물, 다진 쪽파와 채썬 목이버섯, 아지타마고(양념에 절인 달걀), 그리고 차슈다. 특이할 것 없는 아주 정석적인 구성이다. 하카타에서 방문했던 라멘 가게에서는 김을 고명으로 올려 포인트를 주었었는데, 아쉽게도 여기는 김을 올리지 않는다. 식단의 단백질 함량을 높이기 위해 차슈 추가로 주문했다. 물론 차슈는 맛도 좋다.

  하카타에서 돼지 사골의 신세계를 경험했더랬다. 하카타잇소우(Hakata issou)라는 라멘 가게를 방문했었는데, 현지인들에게도 정평이 난 가게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며 수없이 많은 돼지국밥의 그릇을 세어 왔지만, 그곳의 육수는 정말 돼지 육수의 정수를 표현하고 있었다. 뼈를 우려낸 백탕 스프는 콜라겐과 지방이 콜로이드화되어 물에 용해된 육수다(<라멘> 참고). 높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우려내야만 콜로이드화가 활발히 진행되어 진국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지방 비율이 높아질 수록 끈적하고 돼지 향이 강한 스프가 된다. 

  하카타의 추억을 떠올리며 곧바로 스프를 한 스푼 떠먹어 보았다. 음, 생각보다는 아쉬운 걸. 두터운 점성과 적절한 염도, 그리고 감칠맛. 스프와 타레의 조화는 완벽하다. 정말 잘 만든 스프이지만, 한 가지가 아쉽다. 돼지 향이 부족해! 난 코를 찌를 듯한 돼지의 향기를 느끼고 싶었다구. 하지만 돼지 향이 강할 수록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니 대중성 있는 스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절충하는 수밖에 없을 테다. 그래도 여긴 돼지국밥의 본고장 부산인데. 흑흑. 우려내는 과정에서 돼지 지방을 걷어냈거나, 혹은 닭발 등을 섞어 향을 희석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하다. 국내에서는 이미 탑클래스다. 서울에도 우후죽순 톤코츠 라멘을 내는 곳들이 생겼지만, 이 가게가 재현하는 하카타식 톤코츠 스프는 밸런스가 아주 좋다. 합격.

  다음은 면이다. 오, 바로 합격. 하카타식 얇은 면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면이 스프를 물고 있어 짭조름한 감칠맛의 균형이 좋다. 익힘 정도가 살짝 아쉬운데, 키오스크 주문 시 익힘 정도를 따로 선택할 수가 없다. 난 무조건 바리카타멘(꼬들면)을 선호하는데, 이곳 면은 카타멘보다도 조금 더 익은 정도다(<라멘> 참고). 면에서도 호불호 없이 무난한 대중성을 취하고 있다. 한국인 입맛에 맞춘 듯하다.

  차슈가 상당히 아쉽다. 오래된 기름 냄새가 난다. 이건 아마도 팬에 구울 때 발생하는 문제다. 차슈는 팬에 한 번 구운 후 간장 타레를 푼 물에 삶아 낸다. 그리고 서빙 전에 다시 데우기 위해 한 번 더 팬에 구워내기도 한다. 근데 그 과정에서 팬을 제대로 닦지 않은 것 같다. 팬을 사용한 후에 제대로 닦아주지 않으면 기름이 남는데, 그 상태에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사용하면 이전에 남은 기름이 산화되어 냄새가 밴다. 초보적인 실수인데 안타깝다. 팬은 점심과 저녁 사이에도 닦아주고, 저녁에 주방 마감한 후에도 꼭 닦아줘야 한다. 이 부분만 신경 썼어도 단연 국내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었을 텐데!

  자 이제는 먹는 법이다. 톤코츠 라멘을 먹을 때는 반드시 간 마늘을 섞어 먹어야 한다. 본인이 마늘을 보면 기겁하는 뱀파이어 부류가 아니라면 반드시 넣어야 한다. 꼭. 처음에는 순정으로 먹다가, 절반 쯤 먹은 지점에서 마늘을 하나 으깨서 섞는다. 라멘 가게에서는 보통 마늘 크러셔를 제공한다. 순정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마늘이 섞이면 전혀 다른 요리로 격상한다. 돼지국밥에도 다진마늘을 넣는 가게들이 꽤 있는데, 돼지사골 육수에 마늘은 정말 찰떡궁합이다. 깨를 갈아서 섞으면 또 다른 맛의 하모니가 펼쳐진다. 마지막은 갓무침(karashi takana). 일본에서는 라멘 반찬으로 갓무침을 함께 내곤 한다. 국내에서는 갓무침을 내는 곳을 처음 봤다. 이게 또 새로운 즐거움이다. 스푼에 면과 육수를 담고 갓무침을 한 꼬집 올려서 먹어보아라. 라면에 김치를 곁들일 때와 같은 환상의 궁합이다.

  다음 순서는 야끼라멘이다. 아지타마고를 추가했다. 스프라멘보다 야끼라멘 쪽이 더 맛있다. 하카타식 야끼라멘은 야채와 면을 볶은 후 톤코츠 육수와 타레를 넣고 더 볶아낸 볶음면 요리다. 모든 면요리가 그렇듯이 국물이 있는 것보다는 볶아서 조리하는 쪽이 면의 식감이 훨씬 살아난다. 짭짤한 소스가 면에 달라붙어 면을 집어먹을 때 염도와 감칠맛이 훨씬 강하다. 면 자체의 맛을 즐기기에는 국물면보다 볶음면이 최고다. 토핑도 훌륭하다. 여긴 삼겹 차슈가 아니라 고기를 간장에 조린 고명이 올라간다. 지방이 없고 고기 결이 선명한걸 보니 뒷다리살로 추정된다. 푹 삶아내어 결대로 부드럽게 으스러진다. 이쪽은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아서 차슈보다 훨씬 맛있었다. 국내에서 하카타식 야끼라멘을 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거다. 라멘을 좋아한다면 꼭 먹어봐야할 요리다.

  마지막에는 후식으로 직접 만든 크림치즈를 내준다. 이 크림치즈가 정말 인상에 남는다. 이것만 따로 팔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훌륭한 디저트다. 치즈의 표면을 당분으로 코팅하였는데, 단맛과 함께 표면의 식감을 살려준다. 이렇게 크림치즈로 단맛까지 즐기고 난 후, 깨끗이 비운 그릇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가게를 나왔다.

  해리단길 거리로 다시 발을 들였다. 해리단길. 해리단길. 아무래도 입에 익지 않는다. 여기는 우1동. 내 고향, 내 정서의 모태가 되는 곳. 개명당한 거리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 추억은 그렇게 상업적인 포장을 거쳐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 여기도 성공적으로 상업화되고 나면 지대가 오르고, 기존의 상인들은 비싼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겠지? 저기 건너편의 방앗간에서 솔솔 새어나오던 참깨 볶는 냄새가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내 추억이 이렇게라도 활기를 얻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익숙한 거리의 외양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표현하기 힘든 우수에 젖게 된다. 썩 반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변화에는 찬성이다. 내 고향이 아무에게도 호명되지 못한 채 잊혀지는 건 더 슬픈 일일 테니까. 나는 발걸음을 천천히 늘어뜨리며 동네 곳곳에 깃든 내 기억들을 더듬었다. 유년기의 기억을 톺아보며 내 무의식의 구조를 해부해나갔다. 아, 지금의 내 정서는 여기서 출발했구나.

  아쉬운 시간을 뒤로하고 끝내 동네를 빠져나가는 길목으로 들어섰다. 해운대역을 막 지나친 철도가 지나다니던 곳이었다. 땡땡 소리를 내며 차단기가 내려올 때면 가만히 서서 철도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신기해하곤 했다. 할머니, 저 기차는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뇌리에 선명한 이 기억들은 이제 어떻게 움직일까. 어디로 가는 걸까. 이제는 철로마저 철거되어 그저 걷기 좋은 자갈밭이다. 나는 자갈밭의 돌멩이들을 하나씩 세어 보았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니? 철로가 놓여있던 길을 따라 잠시 걸었다. 겨울바람에 실려 온 여러 냄새들이 섞였다. 노스탤지어의 냄새다. 나는 살며시 말아 쥔 손등으로 코끝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