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했다

2020.04.16-2020.04.19

#에세이 #수필 #노래 #울음 #울음소리 #언어 #언어의 한계 #항변 #고통 #자해

노래는 인간의 울음소리였다.

  태초에 인간은 신의 언어를 흉내내고자 하였다. 진리를 재현하는 언어, 영혼의 생김새마저 묘사할 수 있는 언어였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은 신의 언어에 도달할 수 없었고, 조악한 모방에서 그쳤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의 언어를 얻었다. 진리 비슷한 것을 재현하는 언어, 영혼 비슷한 것을 묘사할 수 있는 언어였다.

  언어가 있기 이전에 인간은 다른 짐승들처럼 고유의 울음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울음은 영혼의 상태를 소리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울음소리는 감정에 직관적으로 감응하기 때문에 복잡한 신호 체계로 발전할 필요가 없었다. 울음은 간단하지만 영혼의 상태를 상대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언어는 인간에게서 울음소리를 앗아갔다. 언어는 터져나오는 영혼의 격동을 혀 뒤로 삼키게 만드는 신의 저주였다.

  언어의 한계를 자각한 인간은 울음소리를 되찾고자 했다. 이번엔 짐승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었다. 목청으로 만들어내는 원-소리에 높낮이와 속도를 적용하여 감정을 재현하는 소리로 변형시켰다. 그렇게 노래가 탄생하였다. 노래는 인간의 원초적 울음소리를 모방한 결과였다. 하지만 노랫말 없이는 노래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불완전한 울음이었다. 인간은 노래하는 것 외에는 우는 법을 알지 못했다.

노래는 항변이었다.

  인간의 아이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사람이 된다. 언어는 아이를 권력의 세계로 초대하고 질서를 가르친다. 언어는 영혼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친다. 언어는 동시에 아이에게서 울음소리를 앗아간다. 인간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울음을 잃어야 하는 저주에 묶인 것이다.

  노래는 이렇게 울음소리를 앗아간 신에 대한 항변이었다. 울지 않고서는 살아낼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항변이었다. 서로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간의 부조리한 운명에 대한 항변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항변하기 위해 노래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고. 여기 있는 이것은 사람의 영혼이요, 정신이요, 몸이요, 누구에게도 짓밟힐 수 없는 고결한 실존이라고. 노래하는 인간은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한다. 언어로는 설계할 수 없는 논리를 전개한다. 언어로는 선언할 수 없는 생명을 증언한다. 인간의 언어가 실패하는 지점에는 항상 노래가 있다. 시지프스조차 돌덩이를 굴려 올리며 노랫말을 흥얼거렸을 테다. 인간은 노래하는 것 외에는 항변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노래는 자해였다.

  말이 되지 못한 고통은 가슴 속에 노랫말로, 그리고 음정으로 응어리진다. 고통이 퇴적된 지층은 오선지가 되었고, 가슴에 박힌 흉터는 음표가 되었다. 그리고 노래는 목 언저리까지 끌어 올린 고통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이었다. 끝없이 재생되는 인간의 노래는 끝없이 반추되는 고통이다. 고통을 재생하고 흉터를 들쑤시며 목청의 살점을 긁어대는 인간의 울음소리는 분명 자해였다. 인간은 자해하는 것 외에는 항변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나는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