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19.11.23 – 19.11.24

너의 말은 그 격정적인 의미를 숨기려는 듯 건조하게 울려퍼졌다. 이미 예견된 결말이었지만, 그것이 소리로서 형체를 갖추는 그 순간만큼은 결말을 부정하려는 듯, 섬뜩하고, 무겁고, 슬픈 침묵들이 섞여 있었다. 이 덧없는 환상이 아쉬워 결말을 뒤로 미루어 버린다면, 우리에게 남을 건 예쁜 추억만은 아니겠지. 너에게는 수많은 밤들을 거쳐 자리잡은 결의였을 테다. 그걸 무엇보다도 잘 아는데. 나는 이미 기획된 각본 속의 캐릭터처럼 절망과 상심의 수순을 따라가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인간. 인간. 인간. 감정. 구체적인 색채나 질감을 느끼기에는 다분히 추상적인 낱말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무엇보다도 날이 선 채 가슴 한 켠에 응어리지는 낱말들이었다. 정체 모를 것들을 향해 저주를 내던졌다. 아니 사실 그리 격정적일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향할 곳 없는 소극적인 원망들을 혀 밑에서 조용히 굴리다가 삼켰다. 아마도 내가 인간이기에, 네가 인간이기에, 우리가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겠지. 너와 내가 마찰하는 것일까. 우리가 이 굴레와 마찰하는 것일까.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죽음으로 너의 죽음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것도. 나의 죽음이 네 것과 같은 모양이 아니라는 게 어쩌면 너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거라는 것도.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다. 네게 말이 필요할 때는 내 혀를, 네게 거울이 필요할 때는 내 눈을, 네게 온기가 필요할 때는 내 살갗을 내어주면 될 거라고 막연히 낙관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네게 필요한 건 혈액이고 심장이라는 것도. 그런 네게 내어주기에는 내 피가 뜨겁지 못하고 내 심박이 빈약하다는 것도.

나는 어리석었고, 너는 현명했다. 나는 철없는 어린아이 같았고, 너는 내 어리광에도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평생을 어리석은 아이로 살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나는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너의 현명함이 부러웠다. 너의 어른스러움이 고마웠다. 너를 짓누르는 죽음을 안다. 너는 마냥 어리석을 수 없음을 잘 안다. 어린아이로 살겠다는 내 결의조차 네 앞에서는 오만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너의 현명함이 슬펐다. 너의 어른스러움이 차가웠다. 우리 함께 현명할 수는 없었을까. 우리 함께 어리석을 수는 없었을까. 혹은 내가 너에게 현명함을 배우는만큼 어리석음을 가르쳐줄 수는 없었을까.

창백한 달을 함께 올려다보며 우리는 담담한 어조로 끝을 고했다. 이 기억이 추스린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될 때까지. 내가 너의 현명함을 닮을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만 너를 앓았으면 한다. 그리고 너는 나를 앓지 않았으면, 우리 함께 철없던 말들이 너에게는 이미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덧새겨준 한 줄의 상처가 술을 곁들여가며 곱씹을 수 있는 상흔이 될 때까지, 나만 너를 앓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