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증

19.10.06-19.10.16

나는 고장난 레코드 기계처럼 부분부분 끊어진 구절들을 반복해서 뱉어냈다. 그러고는 힘겹게 더듬으며 내뱉은 말들을 이내 주워담곤 했다. 청자를 잃은 언어를 구사하는 일은 아무래도 백해무익했다. 아니 애초에 말을 건넬 상대도, 말로 건네고 싶은 삶의 내용도 내겐 허용된 적이 없었다. 결합이 느슨해 자꾸만 풀리고마는 낱말들의 씨실과 날실을 끊임없이 다시 직조하는 일은 의미없는 노동과도 같았다. 이 무의미한 영겁을 감당하기에는 나에게는 시지프스와 같은 정열이 부족했다. 방대한 권태의 시간을 기록하기에는 나에게는 이상과 같은 어휘가 부족했다.

타르. 니코틴. 타르. 일산화탄소. 니코틴. 삥. 삐가리가 돌면 상념들은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린다. 산소가 부족하다고 구걸할 줄도 알고. 이 몸뚱어리는 의외로 절박함을 아는 녀석이다. 연기를 따라 시각화되는 날숨의 형상을 지켜보고 있는 일은 퍽 재밌는 놀잇감이다. 그래도 아직 숨 쉬는 법을 기억하고 있구나. 작게나마 위안이 된다. 말을 더듬다보면 숨도 더듬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 적이 있었다.

유목을 자각한 이래로 나는 말을 잃어간다. 사람들의 무리를 지나갈 때면, 그들을 감화시키는 화제들로 시끌벅적하다. 내겐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들이지만 퍽 중요하다는 듯하다. 나는 그저 그들의 말을 견뎌낼 때에만 환영받을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간다. 수다스러워진 내 일기장에는 말이 되지 못한 찌꺼기들만 침전되고, 사람들의 흥미를 돋울 이야깃거리를 꾸며내는 익살은 늘어만 간다. 이 지겨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내 어설픈 걸음걸이에 맞추어 손을 잡아주고는 하는 고마운 동행들이 있지만, 내가 말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이들은 내 곁을 함께 걸어줄까. 나의 언어가 되어줄까.

권태마저가 권태로워 적막 속으로 침잠하면, 내 말에 귀 기울여주던 이들과 함께 지샌 밤들이 그리워진다. 폐포 사이사이까지 차오른 권태를 연기에 섞어 뱉어내면, 시야를 가리는 연기 너머로 몇몇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너도 이 하늘을 보고 있을까. 퍼렇게 산란하는 저 가식적인 햇빛 사이로 가려진 별들을 헤아리고 있을까.

불씨가 필터까지 태울 기세로 마지막 발악을 한다. 손가락을 툭 튕기면 불씨가 바닥을 나뒹군다. 내 숨을 허공에다 그려내 보여주던 연기 무리가 이내 사그라든다. 그러면 불씨는 쿨럭 기침을 토하며 긴 잔향을 남긴다. 내 마지막 숨은 필시 저 잔향과 같을 테다. 불씨를 밟아 꺼뜨리고는 이제 발걸음을 되돌려야 한다. 나는 다시 말을 잃어버릴 준비를 한다. 실어증을 변호하기 위한 익살들을 머릿속에 몇 설계해둔다. 그러면 일상으로 이어지는 문이 나를 삼키려 아가리를 벌리고 서 있다. 나는 언제쯤 이 문이 일상이 아니라 여정의 끝으로 이어지게 될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