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

2019.7.4

‘발 붙일 땅이 없다’는 메타포적 감정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트랙 위에 있었다. 어느 곳을 밟아도 서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계속 다음 발자국을 내딛으려 했다. 이 감정을 몸의 열기에 태워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넉넉치 않았다.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달리다가 어느새 고개를 떨구고 트랙의 하얀 선들을 좇았다. 몇 바퀴 째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양 옆의 선을 따라 달렸다. 이 선들은 나를 어디로 이끄는 걸까. 쳇바퀴 돌듯 같은 곳을 달리면서도 나는 한 발 한 발 모든 땅이 생경했다. 숨이 차올라도 고통스럽진 않았다. 나는 더 뜨거운 고통을 원했다. 이 증오스러운 몸둥아리 하나 죽이지 못할 미지근한 통증들을 증오했다.

무신경하게 돌아가는 땅 위에 이 몸둥아리는 무슨 소용인가. 벌거벗은 영혼 하나 붙잡아두지 못하는 이 몸둥아리는 무슨 소용인가. 피를 데우지 못하는 이 심장은 무슨 소용인가. 진실된 단어 하나 뱉지 못하는 이 혀는 무슨 소용인가. 빛을 보지 못하는 이 눈은 무슨 소용인가. 숨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 귀는 무슨 소용인가. 다른 손을 잡지 못하는 이 손은 무슨 소용인가. 땅을 밟지 못하는 이 발은 무슨 소용이며, 온기를 알지 못하는 이 살갗은 무슨 소용인가.

나는 형용사 없는 시, 음정이 없는 노래. 희멀겋게 탈색된 내 영혼은 예나 지금이나 백지이지만, 물감을 흡수하지 못하는 종이 앞에서 붓을 들어줄 사람은 없겠지.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쓰겠노라며 펜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쓸 줄 아는 문장이란 남루한 구조 신호들뿐이었다.

내 삶을 함께 앓아주는 이가 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이렇게나 혼자다. 우린 내내 같은 땅을 밟고 같은 달을 보며 이 지겨운 여정을 살아냈지만, 너에겐 여행인 이 시간이 나에겐 여전히 유목이다. 네 발자국을 따라밟아봐도 나는 걷는 법을 익히지 못했고, 네 웃음을 빌려와 얼굴에 걸어봐도 나는 웃는 법을 알지 못했다. 너와의 만남은 영원히 계속되겠지만, 나 자신과는 아직 만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오늘도 해는 눈 부셔서 보이지 않았고, 달은 흐릿해서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빛의 자취를 허공에다 그려보며, 내 시선은 먼 하늘과 발 밑의 땅 사이에서 배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