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번줄

2019.7.2 휴게실에 앉아 끄적임

입영 때부터 개목줄 같아서 싫어했던 군번줄을 요즘은 곧잘 목에다 걸고 다닌다. 이 부대는 군번줄을 잘 쓰지 않는 분위기라 군번줄을 차고 있는 목덜미는 시선을 끌게 된다. 종종 이유를 물어오면 ‘액세서리를 못 하니까 허전해서 이거라도 하는거야’라며 진심 반쯤 섞인 농담으로 답한다.

나는 개가 되고 싶은 걸까? 그래.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세대가 늘어나면서 멍멍이나 냥이들에게는 사람 사회의 성원권이 주어졌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는 아니지만, 사람으로서 호명되었다. 사람의 언어로 만든 이름이 붙여지고, 사람의 인격을 본 따 만든 얼굴이 씌워진다. 개팔자가 상팔자다. 반면 군인은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사람으로서의 성원권을 박탈당한 존재다. 사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기본 권리들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법조차 저버린 이 ‘것’들은 사람이 아니기에 문제를 제기할 언어조차 가지지 못한다. 사람의 언어로 지은 이름보다는 숫자로 구성된 군번이 이것들의 존재를 지배한다. 이것들은 비인격이기에 사람의 얼굴이 가지는 존엄성을 흉내낼 수조차 없다. 이것들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은 없고, 이것들의 표정을 읽어줄 사람도 없다. 불리지 않는 이름, 읽히지 않는 얼굴, 그 뒤로 숨겨진 사물존재가 된 것이다. 아무리 봐도 댕댕이나 냥이들의 지위가 더 높은 게 아닐까? 그러니 나는 개가 되고 싶은 것일 테다.

…라는 건 사실 개소리고. 멍멍. 나는 스스로 개가 되고 말고 선택할 권한조차 없다. 내 지위를 선택한 건 내가 아니다. 내 희망과는 별개로 이미 나는 개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더니 개가 되어 있었다. 멍멍. 그러니 이 군번줄은 멍멍이가 되어버린 내 현실에 대한 자조를 담은 토템이다. 종교적 의미를 담은 액세서리가 종교인의 심리를 조율하여 신앙심을 상기시키고 종교적 의미를 매순간 일상 속으로 소환하듯이, 군번줄은 멍멍이가 되어버린 내 현실을 참조하기 위한 기호다. 군번줄을 활용한 과장된 일상 연출은 아마도 지금의 내 지위와 거기서 비롯된 고통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기 위한 장치일 테다. 개만도 못한 개. 나는 차라리 귀여운 페럿이 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