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음식 비평을 시작하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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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주는 인간의 신체와 직접 상호작용하며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조건을 이룬다. 그렇기에 의식주 문화는 자본과 밀접하게 결탁하고 있다. 의식주는 그 자체로 일종의 물질화된 자본이며, 의복, 음식, 주거 환경 등을 소비하는 패턴과 그 미적 감각은 신체 속에 각인된 문화자본이다.

  우리가 의식주를 단순한 재화가 아닌 자본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재화들에 대한 소비 양상에 따라 더 많은 자원과 재화들에 대한 접근 권한이 차등적으로 부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적 교류의 기회들이 오가는 사교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그 파티 코드에 맞는 ‘세련된’ 옷과 ‘고급스러운’ 패션 감각이 요구된다. 주거 환경은 투자의 대상인 부동산 자원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소유한 자원 관리의 효율성을 담보하기도 한다. 오피스 타운에 근접한 주거지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여 시간 자원을 확보하게 해주고, 교통이 발달한 주거지는 각종 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공간적 접근성을 용이하게 한다.

  반대로 사회가 생산하고 보유하는 의식주 재화에 대한 접근성은 개인이 가진 경제자본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결론적으로, 의식주는 경제자본과 상호 전환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자기 증식 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재화인 셈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향유하는 의식주 문화는 곧 그의 자본 계급을 지시하는 상징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주의 문제가 단순히 ‘취향’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비판의 칼날을 날카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의식주 문화 속에서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는 계급 분화의 메커니즘이 ‘취향 존중’이라는 마법의 단어 뒤로 은폐되어선 안 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부르디외는 취향과 계급의 유착 관계를 포착하여 명석한 통찰을 내놓은 바 있다. 우리가 가장 개인적인 영역이라고 간주하는 개인의 취향이야말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권력 투쟁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예술 작품 또한 계급의 표식이었다. 상류 계층만이 예술가를 고용하고 작품을 소장할 수 있었으며, 예술 작품이 지닌 일회적인 아우라를 독점할 수 있었다. 또한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그 문화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류 계급의 권위를 드러내는 장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복제가능한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예술 문화는 민주화라는 대격변을 겪어왔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계급과 신분에 관계 없이 접근가능한 ‘대중 문화’라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의식주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계급 질서와 은밀하게 얽혀 있으며, 계급으로 분화된 우리 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기호 체계다. 따라서 의식주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비평은 예술 비평과는 달리 계급과 자본에 관한 문제의식들을 품은 채 조심스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내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음식 비평이 가진 이러한 면모 때문에 나는 여태껏 식문화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주저해왔다. 음식이야말로 내가 영화, 문학, 음악 등의 예술 장르에 비해 가장 많은 지식과 경험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지만, 음식 비평가로서의 내 인격을 사람들 앞에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식문화 속에서 개인 주체는 자본주의적 계급화에 종속된 주체이고, 음식 비평에는 필연적으로 화자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주장들이 섞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견해들을 진리인 양 떠들어댈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써낸 글이 계급 분화를 답습하고 재생산하길 원하지 않는다.

  이 고민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가진 지식은 내 주관적 세계의 진리인 걸. 내가 모르는 것들은 비평을 써나가면서, 그리고 내 견해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면서 배우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비평가로서 이미 출사표를 내던졌고, 무대에 올라 선 이상 이 역할을 수행해나갈 수밖에 없다.

  일단 이 고민에 대해 내가 강구해낸 해결책은 리뷰와 비평을 구분하는 것이다. 내가 ‘리뷰’라고 부르는 글은 식문화를 향유하는 한 명의 소비자로서 상품의 질을 평가하는 내용으로 구성될 것이다. 주로 하나의 비즈니스(식당)를 소재로 삼고, 그 비즈니스가 제공하는 음식의 맛과 경험 디자인을 소개하는 성격의 글이 될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맛집 리뷰’와 별반 다를 바 없을 테다.

반면 비평가로서 글을 쓸 때에는 리뷰처럼 날을 세우지 않은 어휘들로 주관적인 감상만을 나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평이란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비평가는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요리사가 음식 속에 담아낸 고민의 시간들을 읽어내야 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삶을 함께 엮어나가는 이 식당이라는 공간을 읽어내야 한다.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부터 체내에서 소화되는 과정까지 모든 절차에 담긴 과학을 읽어내야 한다. 식재료가 생산되는 순간부터 요리되어 식탁 위에 놓이기까지, 이 한 숟가락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서의 사회를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먹음이라는 행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징 투쟁들의 역학을 읽어내야 한다.

  음식에는 사회, 과학, 역사, 디자인, 비즈니스, 맛의 현상학, 그리고 음식을 먹는 경험이 만들어내는 개인적 서사까지, 무수한 의미 요소들이 융해되어 있다. 나는 내 역량이 닿는 한 이 모든 층위들을 넘나들며 사유하고자 한다. 이 가장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는 통섭적인 지식의 용광로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지식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어주는 구심력은 내 개인의 경험과 감성과 서사가 될 것이다.

  미리 고백하건대, 내 지적 배경 때문에 내 비평은 어쩔 수 없이 현상학과 과학과 사회학의 관점으로 편향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음식을 둘러싼 비즈니스와 디자인에 대해서는 지식의 공백이 많고, 역사 지식에는 더더욱 자신이 없다. 멋드러진 내러티브를 구사할만큼 문학적 기교에 밝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먹음이라는 행위에 담길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구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내어놓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나의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생존은 다음 끼니를 벌기 위해 매 끼니를 삼켜야하는 무의미한 순환의 과정이다. 우리가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종속된 필멸의 존재인 이상 이 순환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무의미한 순환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생존이 아닌 삶을 일구어내야 한다. 다시 굴러떨어질 돌을 산 꼭대기로 굴려올리며 시지프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나는 가장 원초적인 생의 욕구, 가장 절박한 실존적 문제, 그리고 가장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인 ‘먹음’으로부터 그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곳에 전시될 텍스트들은 내가 이 무의미한 순환에 의미를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다. 내 글이 생존에 지친 독자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운 도피처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