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배, 섹스의 쾌락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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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5 혼자 담배 피다가 현타 와서 끄적임

프롤로그

술, 담배, 그리고 섹스. 우리가 물질적 쾌락을 위해 일삼는 이러한 행위들은 그저 물질적 조건으로 축소될 수 없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물질적 쾌락이라는 기호 위에 상징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행위들을 여기서는 ‘일상적 의례 행위’라고 부르겠다.

의례란 본래 비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위한 통과지점이다. 오랜 세월 반복되며 굳어진 일련의 행위 수순을 따라,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조율하고 일시적으로 다른 의미-시공간 속으로 들어선다. 의례를 통해 실현하는 경험들은 일상과 철저히 분리된 채 새로운 논리에 따라 진행된다는 의미에서 비일상적이다. 예를 들어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행해지는 각종 축제들은 일상을 지배하던 논리에서 잠깐 벗어나 그 시간 그 장소에서만 허용되는 쾌락을 즐기기 위한 의례인 것이다.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제의와는 다르게, ‘일상적 의례 행위’는 일상의 흐름 속에 비일상적 경험들을 화합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일상적 의례 행위를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일탈적 감정들을 통제된 일상 속에서 제한적으로 실현한다. 일상적 의례는 매끄럽고 연속적인 일상이라는 배경 위에 울퉁불퉁한 불연속의 지점을 도입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술, 담배, 섹스를 함께 나눈 사람들과의 기억을 다른 배경 기억들 위로 도드라지게 솟아오른 특별한 시간으로서 인식한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일상적 의례 행위인 술, 담배, 그리고 섹스에 관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우선 이 글의 주제문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면서 출발하고 싶다. 술은 알콜과 같지 않다. 담배는 니코틴이 아니며, 섹스는 오르가즘이 아니다.

술에는 알콜이, 담배에는 니코틴과 타르가, 섹스에는 오르가즘이 동반되어야만 그것이 일탈을 향한 의례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의례에는 감정의 조율을 돕는 일련의 자극 신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종교적인 의례들을 떠올려보자. 웅장한 건물, 침묵 속에 자리잡은 근엄한 분위기, 그 장소를 상기시키는 독특한 향내, 빛이나 연기를 활용한 시각 연출, 각종 악기를 활용한 청각 연출 등, 그 시공간에 비일상적인 공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장치들이 도입된다. 일상적 의례 행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음식과 알콜, 니코틴과 타르, 타들어가는 불씨와 연기와 냄새, 적당한 조명과 짜릿한 말초적 쾌감. 이렇게 특별한 장치들이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의례의 점화를 위해 도입된 장치가 의례 그 자체보다 더 비대해지는 경우가 있다. 단순한 연출에 불과했던 물질적 요소가 과장되어 의례 본연의 의미를 집어삼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중독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알콜 중독의 경우, ‘술’이라는 의례를 위해 알콜이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알콜을 섭취하기 위해 술이 이용된다. 중독의 상황에서 술, 담배, 섹스는 그저 알콜, 니코틴, 오르가즘을 체내에 주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것이다.

왜 이런 중독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알콜, 니코틴, 오르가즘 속에서, 의례를 통해 조성되는 짜릿한 일탈적 경험의 잔상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술, 담배, 섹스를 나누며 타인과 내가 하나가 되었던 기억, 그 기억을 잊지 못해서 우리는 그 순간을 재현하려는 것일 테다. 하지만 손쉽게 빌려온 자극들을 나열한다고 해서 의례를 재현할 수는 없다. 이 행위들이 가져다주는 쾌락은 그것들의 의례적인 특성으로부터 발생하며, 그 쾌락은 물질적/생리적 쾌감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술은 심리를 전환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데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매체다. 그리고 술은 그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연결을 촉진하는 데에도 가장 효과적인 소재다. 우리는 ‘술 한 잔’을 통해 새로운 인연의 계기를 만들기도 하고, 오래된 친분을 증명하기도 한다. 술이 이러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알콜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의례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인에게 접근할 때 사회적으로 약속된 예법을 경유해야만 한다. 윤리나 예법이 없는 진공 상태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벌거벗은 채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충돌만을 끝없이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접근하기 위한 예법은 우리의 벌거벗은 마음에 서로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마련된 안전 장치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안전 장치가 거추장스럽거나 비효율적인 경우가 있다. 때로는 가식적이지 않고 조금은 무례한 태도가 두 사람의 우연한 접점을 만들어내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처 주지 않는 무례함’의 영역을 일시적으로 넓히기 위한 의례가 바로 술이다.

술이라는 의례에 참여할 때 우리는 어떤 암묵적인 규칙에 동의하게 된다. 그 시공간에서만큼은 서로에게 보다 진솔하고 자유로운 태도와 접근을 허용하자는 규칙이다. 우리는 술상에 함께 오른 상대에게 예절 감각을 평소보다 느슨하게 풀고, 다소 무례할 수 있는 접근에도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알콜이 그 관용에 대한 변명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알콜은 이성적인 예절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해 도입된 물질적 조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상적인 인격보다 관대해진 가상의 인격을 연기하기 위해 심리를 조율하는 일종의 스위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례를 위한 장치에 불과했던 알콜이 그 자체로서 목표가 되는 순간, 술은 더 이상 사회적 의례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알콜 중독이다. 술은 알콜을 체내로 주입하는 운반체가 되어버린다. 겉치레를 걷어내고 상처주지 않는 무례함을 가능케 했던 술이 알콜로 축소되는 순간, 술은 그저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에 지나지 않는다.

담배

담배는 일상적 의례 행위들 중에서도 가장 연출이 화려한 매체다. 우선 흡연장은 일상공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인적이 드문 장소에 마련된다. 시가나 시샤 등의 경우 흡연장은 카페나 식당, 혹은 바 형태의 환경일 수도 있다. 흡연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점에서 이미 흡연자는 일상으로부터의 공간적 ‘분리’를 경험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의례 절차는 담배를 불로 태워 연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 단계에서 불을 만들어내고 무언가를 태운다고 하는, 일상 속에서는 목격하기 힘든 일종의 파괴 행위를 경험하게 된다. (아마도 담배는 도시 문화 속에서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는 유일한 방화 행위일 것이다.) 성냥, 라이터, 숯 등 불을 만들어내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불을 만들어내는 매체에 따라 흡연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자극-장치도 달라진다. 성냥을 성냥갑에 마찰시킬 때의 촉감, 기름 라이터 특유의 매캐한 기름 냄새, 듀퐁 라이터를 열 때 청량하게 울려퍼지는 금속음, 숯을 피우기 위해 들이는 간단한 신체 노동 등,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의례를 점화시키는 스위치는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기는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화려한 연출 장치가 된다. 특유의 향과 맛을 지닌 하얀 연기가 공중에 피어오르며 우리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하면, 우리의 심리는 일상으로부터 유리된다. 다음 순서는 그 연기를 체내로 받아들였다가 다시 뱉어내면서, 연기가 상징하는 일탈적 의미를 입으로 머금어두는 것이다. 우리는 타들어가는 담배의 길이만큼 한시적인 해방을 얻는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는 독특한 호흡 동작을 공유하면서, 그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모종의 동질감이나 유대감이 형성되기도 한다. “학연, 지연, 혈연 그리고 흡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처럼 본래 담배라는 의례에서 니코틴이 하는 역할은 아주 미미하다. 아마도 니코틴은 매캐한 연기를 체내로 들이마시는 것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을 완화해주는 정도의 역할만을 할 것이다. 하지만 장치에 불과했던 니코틴이 그 자체로서 목표가 되는 순간, 담배는 사회적 의례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니코틴을 체내로 주입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고 만다.

섹스

자극의 끝에서 발견하는 덧없는 허무와 그 씁쓸한 뒷맛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섹스가 오르가즘으로 축소될 수 없다는 사실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섹스는 아마도 다른 어떤 의례보다도 제의적인 성격이 강조되어야 하는 의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는 섹스의 범위는 편의를 위해 ‘두 사람 사이의 정사’로 제한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상은 사려깊은 태도로 숭고 경험에 접근하는 ‘제의’인 반면, 그 이외의 섹스 – 예를 들어 자위 행위나 다자 간의 정사 행위 – 는 대체로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우선 섹스는 사회의 시선이 차단된 은밀한 진공의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둘만의 공간, 그 차폐성과 은밀성은 섹스라는 의례가 시작되기 위한 제 1조건이다. 적막 속에서 고조된 공기. 쾌락의 예감 속으로 상대와 함께 걸어 들어가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몸을 섞기 시작하면 생소한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상대의 격앙된 얼굴 위로 그 사람의 평소 인격들이 겹쳐 보일 때 느끼는 배덕감, 상대가 느끼는 격앙의 근원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낭만적인 인식, 숨겨져 있던 상대의 새로운 인격과 표정을 발견해나가는 지적 호기심 등, 그 감정들은 단순한 감각이 아닌 고차원적 ‘인식’의 층위에서 일어난다. 물론 감각의 층위에서도 생소한 자극들을 경험하게 된다. 시각 자극에 가려져 있던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자극이 선명해지면서, 오감이 예민하게 되살아나는 듯한 감각적 충만을 경험한다. 그리고 타인의 체온이 내 살갗으로 파고들 때, 우리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상대의 존재를 선명하게 체감한다. 아마도 그것은 서로의 존재가 의심하지 못할 진리처럼 다가오는, 폭력과도 같은 인식론적 경험이다.

상대와 나의 영혼이 같은 호흡으로 이어진 채 같은 순간을 엮어나간다. 그 합일감은 마치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자아를 넘어서는 듯한 초월적인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이 정서적인 합일감은 둘의 실존이 교차하며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기억을 새겨나갈 때에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숭고한 경험이다. 두 인격체가 하나의 실존, 하나의 상황을 공유해야만 진정으로 합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인 합일을 이루지 않은 채 성급하게 타올라버린 오르가즘은 공허한 쓴맛만을 남긴다. 이른바 ‘현타’라고 부르는, 끝없이 추락하는 듯한 감정의 늪,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권태와 자기혐오의 메아리만 남을 뿐이다. 두 사람이 하나의 실존적 상황 속으로 엮여들어가는 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면, 섹스는 사랑이라는 조건 아래서만 완전할 수 있다. 사랑이 없는 섹스는 제의적 가치를 상실한 쾌락의 잔상일 뿐이고, 오르가즘을 체내에 주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격정적인 절정 후에는 열기에 들뜬 몸이 피로감과 함께 안정을 되찾으려 하고, 뜨겁게 조율된 공기가 천천히 식으며 가라앉는다. 즉 오르가즘은 섹스라는 의례가 조성하는 일탈적 시간을 마무리짓고 일상으로 연착륙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장치에 불과했던 오르가즘이 그 자체로서 목표가 되는 순간, 섹스는 더 이상 숭고 경험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의례가 아닌 공허한 섹스는 인간의 영혼과 인격을 휘발시키고, 영혼의 창구였던 몸과 몸은 더 이상 고깃덩이와 구별되지 않는다.

에필로그

이 글을 머릿속에서 기획하기 시작한 건 혼자 담배 피다가 현타가 왔을 때였다. 지금 처해있는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술은 마시지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잠깐 빠져나오기 위한 도피성 담배와,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씁쓸한 현타의 뒷맛이 끝내주는 자위 생활이 내게 허용된 유일한 말초적 쾌락이다. 그러다보니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 혼자 피는 담배는 이리도 맛이 없고, 똑같은 오르가즘이라도 함께하는 상대와 분위기가 달라지면 그렇게 만족감이 달라지는 것일까? 써놓고보니 너무 결론이 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않다는 듯이 뻔뻔하게 풀어내는 게 글을 쓰는 요령 아닐까? 아… 술, 담배, 섹스! 사실 셋 다 내가 그리 탐닉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억압되다 보면 욕구가 강해지는 법이다. 함께 즐길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있었다면… 휴… 술을 곁들여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영혼의 거리를 좁히고, 대화의 열기에 들뜬 채로 섹스를 즐기며 그 교감을 확인하고, 열이 식을 때쯤 함께 담배를 피며 여운을 만끽하는 거지. 상상만 해도 설레는걸. 하지만 현실은? 허허허…

글을 완성해놓고 보니 내가 왜 이 일상적 의례 행위들에 애착을 느끼는지, 어떻게 즐기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왜 즐겨도 되는 것인지, 말하자면 이 행위들의 정당성과 지향점이 머릿속에 좀 정리가 된다. 아무래도 이 글 덕분에 나는 술, 담배, 섹스를 비롯한 일상적 의례들에 더 탐닉하게 될 것만 같다. 물론 전역한 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