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말과 혀와 키스

2020.02.17-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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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19.11.23 – 19.11.24

너의 말은 그 격정적인 의미를 숨기려는 듯 건조하게 울려퍼졌다. 이미 예견된 결말이었지만, 그것이 소리로서 형체를 갖추는 그 순간만큼은 결말을 부정하려는 듯, 섬뜩하고, 무겁고, 슬픈 침묵들이 섞여 있었다. 이 덧없는 환상이 아쉬워 결말을 뒤로 미루어 버린다면, 우리에게 남을 … Continue reading

실어증

19.10.06-19.10.16

나는 고장난 레코드 기계처럼 부분부분 끊어진 구절들을 반복해서 뱉어냈다. 그러고는 힘겹게 더듬으며 내뱉은 말들을 이내 주워담곤 했다. 청자를 잃은 언어를 구사하는 일은 아무래도 백해무익했다. 아니 애초에 말을 건넬 상대도, 말로 건네고 싶은 삶의 내용도 내겐 허용된 적이 없었다. 결합이 … Continue reading

백지

2019.9.18

나는 언제나 까다로운 백지였다. 흑연으로 꾹꾹 눌러 새긴 문장들은 하룻밤을 견디지 못하고 휘발하곤 했다. 연필을 꺼내 든 사람들은 내 입 모양을 따라 몇 글자 끄적이더니 이내 흥미를 잃고 떠나갔더랬다. 나는 그들의 선곡표를, 그들의 일기를, 그들의 대사를 내 안에 받아 … Continue reading

내가 나를 빚지고 있는 ‘너’들에게

2019.9.10 <희랍어 시간>을 읽다가

새까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방 안에서 서로 그 동안 썼던 일기를 교환했던 밤. 우리는 서로의 죽음을 서로에게 고백하지 못한 긴 공백의 시간을 함께 더듬었지. 우리는 캄캄한 밤하늘의 색보다도 어두운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옮겼고, 서걱이는 모래 소리와 … Continue reading

트랙

2019.7.4

‘발 붙일 땅이 없다’는 메타포적 감정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트랙 위에 있었다. 어느 곳을 밟아도 서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계속 다음 발자국을 내딛으려 했다. 이 감정을 몸의 열기에 태워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 Continue reading

낭만

A
“난 미지근한 게 싫어. 다들 너무 미지근하다고.
차가운 것도 싫어. 우리 몸은 결국 고기야. 고기는 차가우면 맛 없다고.
뜨거운 것도 싫어. 몸이 너무 뜨거우면 혼이 증발해버린단 말야.”

B
“차가운 고기 시체도, 뜨겁게 타서 향이 다 날아간 자동인형들도 길거리에 널려 … Continue reading

빗나감 (RE: 이방인)

지난 밤의 냄새가 방을 가득 메울 때쯤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어제와는 또 다른 낯선 해가 걸려있다.
손에는 지난 밤 읽다 지쳐 잠들었던 소설이 한 권 들려있다.
나를 꿰뚫으려 하는 수많은 눈동자들을 지나친다.
그 시선들은 나를 빗나간다.

카페에 들어서서 책을 내려놓는다.… Continue reading

새벽 네 시

옥죄어오는 시계바늘 소리에 대답하듯
피의 온도는 다시 미지근하다.
온기를 알지 못하는 서투른 심장이라 그렇다.

책갈피를 뽑아들고
위안이 될 만한 문장들을 더듬거려 보지만
이미 죽음을 알아버린 저 먼나라의 철학자는
차가운 활자들만 남긴 채 말이 없다.

호흡을 멈춘 새벽 공기는 이리도 무거운데… Continue reading